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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DVD]존 보이트의 귀향 (1disc)(Coming Home,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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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사 또는 공급자 : KINO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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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DESCRIPTION

Special Feature

Additional information

< 감독 및 배우 소개 >
* 감독 : 할 애쉬비 Hal Ashby (1929.09.02 ~ 1988.12.27)
1929년 미국 유타주에서 태어났다. 할 애쉬비는 유타 주립대학을 나왔고 편집자로 활동했다. 1967년 <밤의 열기 속으로>로 오스카 편집상을 수상했으며 첫 극영화 데뷔작은 1970년 <지주>다. 이후 <해롤드와 모드>(1971)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마지막 지령>(1973)을 통해 주목 받는 감독 대열에 오른다. 잭 니콜슨이 출연한 <마지막 지령>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다. 할 애쉬비의 작품들 중 가장 높은 비평적 주목을 받았던 <귀향>(1978)은 베트남전에 관한 영화로, 해군 장교의 아내(제인 폰다)와 사랑에 빠지는 하반신 불수의 퇴역군인(존 보이트)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결과인 인간 파멸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 수작이다. 그는 또한 음악 전기 영화도 만들었는데 <영광을 향하여>(1976)는 미국 모던포크의 선구자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성장과정과 대공황기에 그의 음악이 정치화 돼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영화와 TV 작업을 병행해온 그는 <죽음의 백색테러단>(1986)같은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예전 같은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다. 1988년 캘리포니아 말리부에서 채 환갑이 되지 않은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수상내역]
- 제4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편집상 - 밤의 열기 속으로

* 배우 : 존 보이트 Jon Boight (1938.12.29 ~ )
고등학교와 워싱턴 DC의 가톨릭 대학에 재학할 당시부터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뉴욕으로 이주하여 희곡 계의 전설적인 스승인 샌디 마이즈너의 사사를 받으면서 연극 무대에 섰다. 1961년, 22세의 나이에 존 보이트는 〈O, OYSTERS〉로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했다. 그 해 말, 〈THE SOUND OF MUSIC〉으로 브로드웨이 연극에 데뷔했다. 영화 경력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 시작됐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된 〈미드나이트 카우보이〉로 평단의 극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뉴욕 비평가상, LA 비평가상,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귀향〉에서 제인 폰다의 군인 남편 역으로 출연하기로 예정됐었으나 제인 폰다와 할 애쉬비 감독을 설득하여 월남전의 상처로 인해 고통 받는 루크 마틴 역을 따냈으며 결국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골든 글로브상, 깐느 국제 영화제상, 뉴욕 비평가상, LA 비평가상을 휩쓸었다.

[수상내역]
- 제31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공로상
- 제4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드라마 - 폭주 기관차
- 제3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드라마 - 귀향
- 제5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 귀향
- 제4회 LA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 귀향
- 제43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 귀향
- 제31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 귀향
- 제2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칼 포먼 상 - 미드나잇 카우보이
- 제4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 미드나잇 카우보이
- 제34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 미드나잇 카우보이

* 배우 : 제인 폰다 Jane Fonda (1937.12.21 ~ )
명우 헨리 폰다의 두 번째 부인인 프란스 세이머 브로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때 이름은 제인 시모어 폰다(Jane Seymour Fonda). 남동생인 피터 폰다도 배우이며, 첫 남편인 프랑스 감독 로제 바딘 사이에서 낳은 첫 딸 바네사 바딤(Vanessa Vadim)이 있다.

60년 영화 〈키다리 이야기〉로 데뷔하고, 1965년 프랑스 영화 감독 로제 바딤과 첫 결혼을 하였다. 남편 로제 바딘은 소문난 바람둥이인데 그가 브리짓트 바르도와 까뜨린느 드뇌브 등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퍼뜨리자 결혼한 지 5년만에 이혼을 한다. 1970년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으며, 71년 〈콜걸〉로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72년 반전 평화단을 이끌고 북베트남 방문, '하노이 제인'이라는 이름까지 얻을 정도로, 과격해 헐리우드 사교계에서 그녀의 이름을 명단에서 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내 보수 세력의 지탄을 받았는데, 1973년 두 번째 남편인 급진좌파의 대변인격인 반전 정치가 탐 헤이든의 결혼으로 헐리우드의 비난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1977년 〈줄리아〉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되고, 78년 〈귀향〉으로 마침내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배우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다. 다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었던, 핵발전소의 사고를 영화로 옮겼던 〈차이나 신드롬〉(79)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이를 계기로 반핵 운동에도 앞장섰다.

1980년대에 들어서 제인 폰다는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비디오 시대가 개막되자 그녀는 "운동할 준비가 됐나요?"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에어로빅 비디오 비디오 〈제인 폰다의 워크아웃〉(82)을 제작해서 비디오 마켓을 장악한 것이다.

84년 TV 영화 〈돌메이커〉로 에미상을 수상하였고, 88년 바버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서 북베트남에서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그녀는 1991년 CNN 사장 테리 터너와 세 번째 결혼을 하고 92년에는 사업에만 열중하겠다며 영화에 미련 없이 은퇴를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수상내역]
- 제3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 차이나 신드롬
- 제3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자인기상 - 차이나 신드롬
- 제3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 줄리아
- 제5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 귀향
- 제3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드라마 - 귀향
- 제3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드라마 - 줄리아
- 제4회 LA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 캘리포니아의 다섯 부부
- 제4회 LA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 컴스 호스맨
- 제4회 LA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 귀향
- 제2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드라마 - 콜걸
- 제6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 콜걸
- 제4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 콜걸
- 제36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 콜걸
- 제34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 - 데이 쇼트 하우스

< 줄거리 >
** 아카데미 남우주연(존 보이트), 여우주연(제인 폰다), 각본상 수상.

남편이 월남전 파병으로 싸우러 간 사이에 역시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해 하체가 마비가 된 상이 군인과 사랑에 빠진다. 이윽고 돌아온 남편은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도 역시 부상을 당해 다리를 전다. 그의 부상은 전투 중에 입은 것이 아니라 욕실까지 총기를 휴대해야 했던 처절한 전장에서 욕실에서 미끌어 지면서 생긴 총기 오발 사고로 부상을 입은 것 그러나 그는 훈장을 받는다. 귀국 후에도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던 이들은 더러 가정 파탄으로 나아가서는 비관으로 인한 자살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들은 묻는다. 왜 우리는 그곳에 가서 싸웠는지....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